11월의 제주도 여행. 둘째날
11월의 제주도. 둘째날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숙소가 서귀포인 관계로 근처에 있는 관광 코스를 찾아봤다. 사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1부터 10까지 다 짜놓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지도를 보며 그때 그때 가고싶은 장소를 찍어 거기로부터 시작하여 그 주변을 탐방하는 것이었다.
난 여행 스타일이 꼼꼼히 시간에 맞춰 들러보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즐기면서 다니는 스타일이라, 여행 스타일이 맞는 사람과 간다면 금상첨화지만 아니라면.. 서로가 고생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암튼.!! 둘째날의 제주도 여행의 시작은 이중섭 거리로부터 시작하였다.
여기 이 돌은 이중섭 거리에 있는 이중섭님의 생가에서 찍은 돌인데 새겨진 문양이 마치 옷감과 하나되어 보이는 문양이라 신기해서 찍게 되었다.
딱히 돌에 관한 설명이 없었기에 신기하고 때론 아름다워 보여 찍게 된 사진이다.
이중섭 생가에 있던 민들레꽃 감성 사진 한장.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피사체를 선정하는 것에 대해 힘들 때가 있다. 모델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고 주변 인물들을 찍게 되면 초상권에 대해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조심조심 하며 그냥 주변에 보이는 사물을 찍게 되는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바로 꽃.
이중섬 생가에 있던 동상이다. 사실 이중섭 거리 말로만 듣고 어떠한 인물인지는 자세히 몰랐다.
하지만 알쓸신잡 제주편을 보고 나선. 정말 눈물없이는 못 듣는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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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평원에서 부터 부자로 살았다. 특히 형인 광석이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장이 된 형은 이중섭의 모든 것을 책임졌다. 형이 원산에 큰 백화점을 열게 되어 온가족이 이주했다. 이후 월남하기 전까지 이중섭은 원산에서 살았다. 광복되기 바로 전에 결혼한 그와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는 금슬이 좋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1939년에 서울 문화학원에서 문학도였던 아내와 처음 만났고 결혼했다. 1943년에 집에 결혼 허락을 청하고 2년 걸렸다고. 마사코와 결혼한 후에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라는 의미라고. 이중섭과 마사코는 서로를 '아고리', '아스파라거스'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아고리'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 친구들이 턱이 길었던 이중섭을 부르던 별명이었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고향 원산을 떠나 흥남 철수 때 한국으로 내려와 부산, 제주도로 옮긴 후 게를 잡고 한라산에서 부추를 뜯으며 힘들게 살게 된다. 가난 때문에 1952년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마사코와 첫째아들의 건강이 무척 나빠진 상태이기도 했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면서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래는 온 가족이 함께 일본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이중섭은 여권이 없어 가지 못하고 마사코와 아이들만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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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나무위키 출처이다.
알쓸신잡 제주편에 보면 황교익 선생이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중섭이라는 작가는 한국에서 홀로 작품 작업을 하며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는데.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술로 많은 날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변에선 행려변자로 생각하게 되고.. 그가 죽었을 땐 무연고자의 신세로 영안실에 방치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초라하고 아쉽게 마감이 되어 버린다.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고 있었다면... 그의 그림과 그의 문화가 더 일찍 알려지고 빛을 봤었다면.. 그리워하던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그의 그림에 묻어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이 사연을 알고 나서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사람은 시대도 잘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ㅜㅜ
위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쓰고보니.. 이 꽃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이중섭. 그의 생가 터이다. 이 집에서 살았지만 비밀은..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자그마한 문 안에 1.5평 남짓의 방에서 온가족(4인)이 지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모두 멀리 떠나보낸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렸을까..
이중섭 거리에 만들어 진 수레끄는 사람과 소. 가족이 보인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알쓸신잡 제주편을 보고 나서는 단박에 이해를 하게 되었다.
앞에서 소를 끌고 있는 사람은 이중섭 작가 자신이며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부인과 그의 두 아들인 것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조각이다..
위의 사진들은 이중섭거리에서 팔고있는 귀여운 기념품들이다.
이중섭거리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플리마켓이 열려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많이 판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간 날은 평일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헤이 브라더라는 카페이다. 여긴 지인을 마라도 가는 배에 태워다 주면서 잠시 들른 카페이다.
깨끗한 제주 남쪽 바다가 보이며 아주 경관이 좋게 만들어진 카페이다. Hey Brother~
정면에서 바라본 사진은 어디다 갖다 팔았는지... 제주의 푸른 바다가 잘 보이며 태양이 너무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어서 안찍었을지도..
11월 중순의 날씨였는데 생각보단 쌀쌀해서 패딩 잠바를 입고 밖에서 즐겼었다.
위의 두 사진은 헤이브라더 뒷 편에 있던 조각상인데.. 카페 같은 곳에서 운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카페는 문이 닫혀있고.. 사유지 인것 같아 들어갈 수도 없게 해놔서.. 밖에서만 찍었다.
뭔가 난해한 조형물이었는데.. 아직은 내가 이해하는게 많이 힘든것 같다.
아.. 대망의 추사관.
추사 김정희가 유배를 오게 되어 이 동네에 살게 되면서 그 후에 추사관을 지었다고 한다.
아..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내가 갔던 주간이 딱 전기 공사를 한다고 하여 열리지 않는다고해서.. 밖에서만 사진을 찍고 돌아와야 했다.
안타깝다.. 날이 풀리면 다시 돌아와서 방문을 해야겠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알쓸신잡 제주편을 보았는데, 유시민 작가가 아주 잘 이야기 해주시고 영상도 보게되어 한 시름은 놓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님의 동상.
추사관 앞 동네에 있던 꽃들을 찍었다.
제주는 갈대가 참 아름다운 동네인 것 같다.
갈대 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오게 되었다.,
추사관 옆 돌담길이다.
제주는 돌이 참 많은 곳이므로(화강암), 어딜 가나 돌담을 쌓아서 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이쁘게 잘 쌓는 것도 정말 기술이라면 기술일거 같다.
제주 둘째날 일정 중 반나절 돌아봤다. 헥헥헥. 나머지 반나절은 내일 포스팅을 해야겠다... 휘리릭.